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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전북산사랑
작성일 2020-04-18 (토)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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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묘소를 품은 남원 금지 우비산

금남호남정맥 천황지맥, 남원 금지의 우비산牛鼻山(115.0m)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트린 김주열 열사 묘소를 간직한 소의 코 형국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0/04/17 [10:04]

금남호남정맥 천황지맥, 남원 금지의 우비산牛鼻山(115.0m)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트린 김주열 열사 묘소를 간직한 소의 코 형국

새만금일보 | 입력 : 2020/04/17 [10:04]
 

▲ 김주열열사 묘소와 우비산 전경     ©

 
<개요와 자연경관>
  우비산牛鼻山은 풍수지리상 소의 코를 닮은 명당으로 3.15 부정선거를 저지른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트린 김주열 열사의 묘소를 간직한 산이다. 나덕주 남원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장의 고증에 의하면, 예로부터 선조들이 김주열 열사의 묘소가 위치한 곳은 소의 코를 닮은 명당이라서 소 우牛, 코 비鼻를 쓰는 牛鼻山우비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 김주열열사 묘소     ©

 

  <디지털남원문화대전>에는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는 제2차 마산시위를 촉발시켜서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킨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주인공 김주열 열사의 고향이다. 그는 고향의 선산인 우비산에 묻혔다.”고 기록되었다.
 

▲ 김주열열사 기념관     ©


  김주열 열사가 태어난 옹정리 고룡마을은 풍수지리상 세 가지 형국의 명당을 가졌다고 전해 온다. (1) 옥녀가 머리를 빗으러 거울을 보고 머리를 한 움큼 쥐고 빗질을 하는 형국 (2) 늙은 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 (3) 게가 먹이를 집으러 두 집게 발을 벌리고 있는 형국 등이다. 
 <<한국지명 총람>>에는 “고룡마을은 옹정 동북쪽에 있으며, 고룡서원은 조선시대(1583년)에 세워졌는데,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지금은 남원의 주산이 백공산 아래로 이전했다.. 
 

▲ 우비산에서 본 김주열 열사 기념관     ©


<산경山經과 수경水經>
 1769년경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의 우리 전통지리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우비산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우리 민족정기가 서린 백두산을 출발한 백두대간이 전북 무주를 지나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갈려나온 금남호남정맥이 장안산, 사두봉, 구분령, 신무산 등을 거쳐 팔공산에 닿는다. 팔공산에서 금남호남정맥과 헤어져서 마령치를 거쳐 백운산(갈미봉)에 닿으면 성수지맥, 영대지맥, 천황지맥으로 세 갈래를 친다.

▲ 우비산 능선     ©


 백운산에서 천황지맥은 개동산, 상서산, 상서산, 동막골봉, 작은 복치봉, 큰 복치봉, 상사바위봉(대성분맥 분기), 만행산 천황봉, 작은 천황봉(태자봉), 시루봉, 둔병치봉, 둔병치봉, 큰 연화산, 구라치봉, 약산, 어깨재봉, 책여산, 호치봉, 나분들봉, 뒷밤재봉, 왕묘산, 왕묘산 남봉(교룡분맥 분기), 계동산, 노적봉, 풍악산, 응봉을 지나 작은 응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노산분맥이 옥녀봉을 지나 우비산을 일으킨다.
 우비산의 물줄기는 모두 요천에 합류하여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고룡마을과 주생면 제천리와 경계를 이룬다.
 

▲ 김주열열사 동상     ©

 
<지리적 위치>
 지리적으로 우비산의 북쪽은 노산과 옥녀봉 너머로 월계산과 천황지맥 응봉(매봉), 동북쪽은 용머리형국의 용두산과 흑송산성을 품은 용투산이 에워싸고 있다. 동남쪽은 고현봉 너머로 금제봉과 가마봉, 서쪽은 천황지맥의 고정봉과 문덕봉이 우뚝 솟아있다.
  
<주변문화와 인문지리>
 <<한국 지명 총람>>, <<남원의 마을유래>>, <<디지털남원전자대전>> 등으로 살펴 본 우비산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우비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는 본래 독우물 또는 옹정甕井이라 했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고룡리, 호산리의 각 일부와 주포면의 제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옹정리라 하고 옹정리에 편입되었다. 1972년 행정 분리에 따라 옹정리의 동편 마을은 금정金井, 서편 마을은 석정石井으로 분리하였다.
 큰 골목 부근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맑고 시원한 물이 솟는 샘이 있다. 대부분 샘의 형태가 항아리 모양이지만 이 샘의 형태는 유달리 항아리 속에 또 항아리가 있는 것처럼 생겨 독우물 또는 독우멀이라 하였다. 지명을 한자로 옹정甕井으로 바꿨다.
 

<문화유적과 명소>
 

▲ 김주열열사 묘소     ©


[김주열 열사 묘소, 추모각]
 민주열사 김주열은 1944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계와 어머니 권찬주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할아버지 김태종은 해방의 혼란기에 면장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조합장을 지낸 천석꾼 부잣집이었다. 김주열은 금지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모가 살던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입학하려던 그 해 마산에서 일어난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시위대에 동참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4월 11일 마산의 중앙 부두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이 떠오르고, 이 주검이 김주열로 확인되자 용공 분자의 난동, 좌익 폭등으로 내몰린 마산 시민들의 울분이 다시 터져 올랐다. 마산의 2차 의거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부산, 광주 등지에도 불을 지폈고, 4월 19일 서울과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 사건은 4.19민주혁명의 도화선에 됐고 결국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4·19혁명을 이끌어낸 김주열 열사는 4월 14일 고향 선산인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우비산 자락에 묻혔다. 그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추모각엔 김주열 열사가 사용했던 책상과 옷 그리고 학용품 등 유품 17종류 93점이 전시돼 있다.
 
 [고룡서원 / 창주서원]
 창주서원은 1579년(선조 12)에 현재의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금정마을에 창건되었다. 원래 고룡서원으로 설립되었다가 사액을 받지 못하였으나 1600년(선조 33)에 ‘창주서원’이라는 현판을 임금이 하사하면서 국가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게 되었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59년 다시 중건되어 현재의 남원시 도통동으로 이전되었다. 창주서원에서는 해마다 옥계 노진의 위패를 모신 ‘춘향春享’ 행사를 음력 3월 20일에 하고 있다.
 

▲ 김주열 열사 생가     ©

 
 

▲ 김주열열사 생가     ©

 
<산행안내>
  o 1코스 : 김주열 열사 기념관. 추모각-김주열 열사 묘소-우비산-김주열 열사 생가(2.5km, 1시간 30분)
 
<교통안내>
  o 순천완주고속도로 서남원 나들목(4번 도로)-옹정 삼거리(745번 도로)-옹정리 고룡마을(김주열 열사 생가)-김주열 열사 기념관
  o 남원(730번 도로)-인계삼거리(4번 도로)-신평리 백평(13번 도로)-옹정리 고룡마을(김주열 열사 생가)-김주열 열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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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 김정길(碧松 金正吉) (사)대한산악연맹 전라북도연맹 상근부회장, 전북산사랑회 고문
호남지리탐사회 회장 TEL:063-250-8370  휴대폰 : 010-4167-3011 개인정보책임자 :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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