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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전북산사랑
작성일 2019-11-16 (토)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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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 천황지맥의 남원 제봉산
김정길의 호남명산 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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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천황지맥의 남원 대산면 제봉산濟鳳山(283.3m)
봉황이 봉황대의 알을 품는 비봉포란飛鳳抱卵의 길지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11/14 [15:58]
▲ 봉황대서 본 제봉산     © 새만금일보
 

제봉산濟鳳山은 봉황을 상징하는 상서로움의 길지다. 풍수지리상 제봉산의 봉황이 대곡마을 앞 봉황대에 있는 봉황의 알을 품으러 날아서 건너간다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 형국이기 때문이다. 본래 대곡의 지명도 봉황의 먹이가 되는 대나무 열매가 많아서 대실大實, 또는 죽곡竹谷이라 했다. 그런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열매 실의 음만 바꿔서 대곡大谷으로 왜곡했다.

 

 
▲ 대곡마을서 본 제봉산(젯봉)     ©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 총람>>에는 제봉산濟鳳山(젯봉)은 대실(대곡) 북쪽에 있는 봉의 형국이다. 봉황대는 대곡리 상대 앞(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중국의 도사가 지나면서 중국 어느 곳에 있는 봉황대와 같다.”고 나와 있다.

마을주민 곽정옥(85), 황의명(74) 씨도 예로부터 산 이름을 제봉산(젯봉)으로 불렀다.”고 말했다. 봉황대는 이 마을에 큰 인물이나 큰 부자가 나올 때마다 울었다고 해서 명암鳴岩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봉황대를 휘돌아가는 봉황천(대곡천) 앞 봉황정에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겼다.

 

 
▲ 대곡마을 앞에 최근 세워진 제월정     ©새만금일보

 

 

그런데 대곡마을회관 건립 비문에는 산의 이름을 제봉산(젯봉)이 아닌 제월봉으로 표기해 놓았다. 필자는 대곡마을 최기(87) 씨와 면담결과 산 위로 떠오르는 달의 모습이 맑게 보인다는 의미로 맑을 제, 달 월을 쓰는 제월봉霽月峰으로 임의로 표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문화콘텐츠닷컴>을 비롯한 대부분의 자료들도 제월봉으로 잘못 나와 있다. <<남원의 마을유래>>에는 봉황대와 대실마을에 대한 유래만 나와 있고, 제봉산에 대한 설명은 없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남원시 행정지도>, <용성지>, <조선환여승람> 등에는 제봉산에 대한 언급이 없다.

 

 
▲ 제월정 건립비의 잘못된 산 이름     © 새만금일보

 

따라서 산의 명칭은 <<한국 지명 총람>>의 기록과 선조들이 불렀던 봉황을 상징하는 제봉산(젯봉)으로 칭하고, 최근 주민들이 임의로 표기한 제월봉은 별칭으로 불러야 옳다.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마을 이름도 봉황의 먹이와 관련 있는 옛 지명인 대실大實 또는 죽실竹實로 바로잡아야 할일이다.

대곡마을에서 보면 봉황대는 영락없는 봉황의 알처럼 둥근 모습이다. 봉황대의 암각은 1945년 이후 마을 주민이 새겼다고 하며, 대곡마을에는 황진 장군기념관과 유적비가 있다.

1769년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우리전통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제봉산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 봉황이 알을품는 봉황대와 봉황정     © 새만금일보

 

금남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는 마령치를 지나 백운산(갈미봉)에 닿는다. 백운산에서 북쪽은 성수지맥(성수산 줄기), 서쪽은 영대지맥(영대산 줄기), 남쪽은 천황지맥(천황산 줄기)으로 세 갈래를 친다.

백운산에서 천황지맥은 남쪽으로 뻗어가며 개동산, 상서산, 상사바위, 만행산 천황봉, 연화산, 뒷밤재봉, 왕묘산, 왕묘산 남봉(교룡분맥 분기), 노적봉, 풍악산을 지나 응봉(매봉)에 닿는다. 응봉에서 동쪽으로 갈려나온 수덕분맥이 월계산을 지나 제봉산을 일으킨다. 물줄기는 북쪽은 옥율천이 요천에 합류하여 섬진강, 남쪽은 대곡천(봉황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다.

 

 

지리적으로 제봉산의 북쪽은 천황지맥의 풍악산과 노적봉, 동쪽은 교룡산, 남쪽은 봉황대 너머로 옥녀봉, 서쪽은 월계산과 천황지맥의 응봉 능선이 에워싸고 있다.

 
▲ 교룡산서 본 치알봉(앞)과 제봉산(뒤)     © 새만금일보

 

<<한국 지명 총람>>, <<남원의 마을 유래>> 등으로 살펴 본 제봉산 주변문화와 인문지리는 이렇다.

본래 남원군 대곡면의 지역으로 대나무가 많으므로 대실 또는 대곡이라 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대리, 소대리, 노산리, 월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곡리라 해서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본래 대곡은 봉황의 먹이가 되는 대나무 열매가 많아서 대실大實, 또는 죽곡竹谷이라 했다. 그런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열매 실의 음만 바꿔서 대곡大谷으로 왜곡했다.

제봉산濟鳳山(젯봉)은 대실(대곡) 북쪽에 있는 봉의 형국이다. 봉황대는 대곡리 상대 앞(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중국의 도사가 지나면서 중국 어느 곳에 있는 봉황대와 같다고 했다.

 

<문화유적과 명소>

[봉황대와 암각화]

봉황대는 봉황이 알을 품는 비봉포란飛鳳抱卵형국이다. 앞에는 봉황천(대곡천)이 흐르는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봉황대라는 암각서와 정자도 있다. 암각화는 봉황대 정상부의 바위에서 10미터 가량 내려온 바위 면에 나뉘어 새겨져 있으며 각 3점씩 모두 6점이다. 위와 아래의 암각화는 형태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양전리식 신상의 변형이며 중심의 것이 가장 잘 갖춰진 모습이다. 양 옆의 것은 생략형으로 보인다. 모두 사람의 얼굴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아래 암각화는 매우 얕게 새겨져서 해가 정면으로 비치면 식별이 어렵다. 청동기시대 후기 것으로 추정된다.

 
▲ 대곡리 제봉산 자락의 황진 장군 기념관     © 새만금일보

 

[황진 장군과 기념관]

무민공 황진武愍公 黃進은 조선의 명장이다. 1550년 남원에서 출생하여 무과에 급제했다. 1592년 동복현감(현 전남 화순)으로 재직 중 조일전쟁이 발발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의 휘하에서 용인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지휘관인 이광의 무능으로 대패햇다. 그 뒤 진안, 안덕원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하며 명성을 높였다. 이치梨峙전투에서 광주목사 권율과 더불어 참전하여 왜군을 격파한 공로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으로 승차하였다. 충청도 병마사로 승차한 뒤에는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의 저격으로 전사하였고 다음 날 진주성이 함몰하며 7만의 군관민이 학살당했다. 사후에 진주 창렬사와 남원 민충사에 배향되었다. 최근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무민공 황진 장군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마을 입구에 무민공 황진 장군 정려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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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 김정길(碧松 金正吉) (사)대한산악연맹 전라북도연맹 상근부회장, 전북산사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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