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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전북산사랑
작성일 2019-06-25 (화) 09:30
ㆍ추천: 0  ㆍ조회: 14      
IP: 220.xxx.117
호남정맥-전주지맥, 완주 마재봉, 달래봉
호남정맥 -전주지맥 완주 마재봉(312m). 달래봉(465.2)
옛적에 말을 타고 다녔던 마치와 전주 시민의 식수원이었던 수원지를 품은 산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6/21 [10:49]
     
▲ 천주교묘지에서 본 달래봉     © 새만금일보

▶ 개요와 자연경관

마재는 옛적에 주민들이 말을 타고 넘어 다녔던 고개였다. 마재봉은 마재 위에 솟은 산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달래봉의 유래는 알 수 없다. 행정기관에서는 산의 정상석이나 이정표를 설치할 때는 산의 유래도 함께 표기해야 옳다.

▲ 소대판 가는 이정표     © 새만금일보

더구나 마재봉 까지는 지역주민들이 많이 이용해서 길이 좋지만 달래봉에서 천주교문중묘지를 거쳐 소대판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를 정비하지 않아서 매우 나쁘다. 신리수원지 둘레 길도 낙엽이 쌓이고 위험해서 등산로 정비가 필요하다. 

▲ 수원지 둘레길     © 새만금일보

  마재봉 남쪽 산자락에 있는 상관上關면은 조선시대 전주의 관문인 남관진의 위쪽이라서 아름이 붙여졌다. 월암은 조선 중기 이이의 문하생으로 두뇌가 명석하고 인물이 출중했던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이 태어났던 곳이다. 파소는 정여립이 역적으로 누명을 쓰고 기축옥사로 생을 마치자 그의 생가를 깊게 파서 만든 가슴 아픈 곳이다.

▲ 천주교 묘지에서 본 수원지     © 새만금일보

김용진 씨는 상관면 상.하죽음上.下竹陰 마을은 발음이 나빠서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하여 상죽음은 덕산德山, 하죽음은 부남富南으로 고쳤다고 고증했다. 이암우 씨는 의암依岩리는 매의 형상인 응봉鷹峰의 입부분이 삐뚤어진 형상이라 동쪽의 장군봉과 중군봉을 바라볼 수가 없는 형상이라, 일제 때에 신리수원지가 생겼다. 신리 수원지 때문에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여 발전이 되지 않는다고 마을사람들의 수명이 짧다고 했다.

▲ 수원생태공원서 본 만덕정 위 바위     © 새만금일보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뤘던 호남 제일의 서예가 <<창암 이삼만의 일기>>에 죽림리 일대 하천변에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샘에서 부녀자들이 겨울에도 머리를 감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는 죽림온천이 개발됐으며 전라선의 남관역이 없어지고 죽림온천역이 신설됐다

<<산경표>>의 우리전통지리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본 마재봉과 달래봉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으로 뻗어 나온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천상데미,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완주와 진안의 경계인 주화산에서 두 갈래를 친다.

▲ 달래봉 아래서 본 전주     © 새만금일보

  주화산에서 금남정맥을 북쪽으로 배웅하고, 호남정맥이 남으로 달리며, 곰티를 지나 만덕산에 이르면 북서쪽으로 전주지맥을 나뉘어 놓고 남쪽의 광양의 백운산까지 내닫는다. 전주지맥은 서쪽으로 달리며 은내봉, 점치를 지나 묵방산에 이르면 북서쪽으로 두리봉과 행치로 가는 산줄기를 갈라놓는다. 그리고 남서쪽으로 달리며 숯재를 지나면 남쪽의 상관리 신리방향으로 달래봉과 마재봉의 산줄기를 일으킨다. 전주지맥은 묵방산 부근에서 동부우회도로, 막은담이재, 기린봉, 마당재를 거쳐 전주시가지를 감싸 안고 달리다 가련산에서 전주천으로 숨어든다.

달래봉과 마재봉의 물줄기는 모두 수원천과 전주천을 통해서 만경강에 살을 섞은 뒤 서해로 골인한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상관면 신리와 의암리에 경계해 있다.

 

▶ 문화유적과 명소

[만마관]

만마관은 2층 구조물이었는데 위층은 6칸의 문루로 되어있고, 아래층은 부채모양의 철문을 단 홍예문이었다. 그 밖에 관문을 지키는 장졸들의 수직방守直房 3칸이 있었다고 한다. 만마관에서 통행을 철저히 통제하면서, 남원 방면에서 전주를 향하던 길손들은 관문이 닫히면 문이 열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문밖에서 하룻밤을 지내야했다. 군부대가 들어오면 그 마을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이곳에도 진이 형성되어 병졸과 부대원들의 거처들이 필요하여 바로 아래의 쑥재에 마을이 생겼다. 그래서 이름이 내아마을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마을이 형성되다보니 등교 시간이면 마을길은 학생들의 행렬이 줄을 지었다고도 한다.

[만덕정]

만덕정은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조망이 뛰어 난 곳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민족정기 말살과 일본화 정책의 수단으로 신사당을 설치하였다. 당시 상관초등학교 전교생 약 300명이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만덕정의 신사에 참배를 한 뒤 학교로 돌아가서 조회를 했다고 한다.    
    
▲ 마재.달래봉 안내판     © 새만금일보

▶ 산행길잡이

o 1코스 : 만덕정주차장-만덕정-마재봉-마재-달래봉-천주교문중묘지-소대판(등산로 않좋음)-수원지둘레길-수원생태공원길-등산로 입구(8.9km, 3시간40분)

o 2코스: 만덕정주차장-만덕정-마재봉-삼각점-작은마재(갈림길)-전망대-신리터널갈림길-달래봉(465.2m)-기린봉갈림길-재전.의암갈림길-숮재-묵방산-점치-민목리종점(10.3km, 4시간 10분)
▲ 만덕정 위 송림길     © 새만금일보

  이번에는 산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고 조팝꽃이 흐드러지게 꽃 잔치를 벌이는 마재봉, 달래봉, 신리수원지 둘레길을 김석범 부안산우회 등반대장과 임실의 박재선 씨, 필자 3명이 답사했다. 임실에 거주하는 박재선 씨는 달래봉 정상에서 우연히 만났다. 등산로 입구 위에 있는 만덕정에 오르면(남쪽) 고덕산이 우뚝 솟았다. 송림을 지나 이정표가 서 있는 마재봉에 닿으면 상관 저수지와 만덕산이 눈에 잡힌다.

▲ 마재봉의 필자     © 새만금일보

곧이어 지형도상에 나타나지 않은 삼각점이 있다. 이정표가 서 있는 작은마재는 서쪽 월암마을, 동쪽 상관저수지와 수월리를 잇는 고개다. 옛적에 말을 타고 넘어 다니던 고개다. 고도가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전망도 탁 트인다. 서쪽으로 전주시가지와 기린봉이 손짓한다. 달래봉 표시와 기념식수 안내판이 있는 달래봉(465.2m)에 닿는다.

▲ 마치서 김석범대장     © 새만금일보

달래봉 나무에 무지기봉이란 비닐표지를 붙여놓아 볼썽사납다. 지역주민들이 부르는 산 이름을 무시하고 검증되지 않은 산 이름을 붙여 놓는 것은 삼가 해야 옳다. 달래봉에서 북쪽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남쪽은 천주교문중묘지와 소대판(길이 나쁨)-신리수원지-수원지둘레길-수원생태공원 수변길-만덕정 입구-상관우체국으로 이어진다.

▲ 달래봉 필자와 김석범 대장     © 새만금일보

  그리고 묵방산은 북쪽으로 30분쯤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서쪽은 기린봉과 막은담이재, 북쪽 묵방산 길로 오르면 동쪽 상관면 의암리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서쪽은 전주 재전마을, 동쪽은 상관 계월마을을 잇는 숯재는 예전에 전주에 내다팔던 숯을 구웠던 고개다.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면 헬리포트와 묵방산 정상석이 있는 묵방산 삼거리다. 하지만 묵방산(523m)은 동쪽으로 0.8km 방향에 있다. 묵방산에서 서쪽은 두리봉을 거쳐 전주 행치로 가고, 동쪽은 점치를 거쳐 호남정맥 만덕산, 남쪽은 마재봉, 달래봉을 거쳐 상관면 신리로 빠진다.

▶교통안내

o 전주-(17번국도)신리-상관우체국-등산로 입구

o 전주-(17번 국도)-신리-민목리-점치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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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1 [10:49]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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