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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전북산사랑
작성일 2019-04-06 (토)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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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성수지맥의 임실 필봉산
호남정맥-성수지맥의 임실 필봉산(筆鋒山, 649.0m)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적인 풍물 굿의 요람 필봉마을을 품은 붓끝의 형상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4/04 [19:20]

     
▲ 필봉저수지서 본 필봉산의 봄     © 새만금일보

  필봉산은 호남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 굿의 요람으로 알려진 필봉마을을 품었다. 필봉산은 상필마을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붓끝처럼 뾰족한 형국으로 다가온다. 이산의 동쪽에 위치한 필봉마을의 이름도 필봉산에서 취한 이름이다. 상필上筆마을은 필봉리의 위쪽, 하필마을은 아래에 위치해 있다.

▲ 상필저수지에서 본 필봉산의 겨울     © 새만금일보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 <전라북도 전도>, <임실군 안내도> 에는 649m봉의 북쪽에 있는 583m의 낮은 봉우리를 필봉산으로 산의 위치를 잘못 표기해 놓았다. 이 때문에 등산객들은 583m봉을 필봉산으로 잘못 인식하고 필봉산이란 작은 표지판을 설치했다.

▲ 작은필봉산의 필자(지도상의 오류인 필봉산)     © 새만금일보

필자는 <<임실군 지>>와 <<한국 지명 총람>> 등의 문헌과 산악인 김석범 씨, 상필마을 양진성 씨를 비롯한 주민들의 고증을 거쳐 필봉산을 세 번에 걸쳐 답사하였다. 그 결과 상필마을 뒤에 붓끝처럼 뾰쪽하게 솟아오른 649m의 봉우리가 필봉산이 옳았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비롯한 지도상에 필봉산으로 표기된 583m봉은 산의 형상이 밋밋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기관에서는 이를 면밀하게 현지조사를 해서 필봉산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 필봉산 정상의 필자(실질적인 정상)     © 새만금일보

필봉마을의 뒷산인 필봉산은 풍수지리상 소가 머무는 외양간의 형국이라고 한다. 마을 앞 건너산은 여시(여우)형국이라 '여시발동'으로 부른다. 그래서 이곳의 나쁜 기운이 들지 않도록 마을입구에 당산나무를 심고 당산제를 지낸다. 베어진 옛 당산나무대신 새로 자란 나무가 당산나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필봉마을의 정자 앞의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누석 탑은 비보裨補의 형식이다 한해의 안녕과 복덕을 기원하는 마음과 함께 흙 묻히고 살아온 촌부들이 모처럼 색동을 입고 고깔 쓴 채 진탕 놀아보는 날이 바로 씻김과 기쁨이 넘치는 정월대보름이다. '푸진 굿과 푸진 삶'을 염원하는 굿판은 가신님의 뜻으로 살아있다. 집집마다 마당을 밟는 신명나는 굿판이 필봉산자락에서 벌어지고 있다.
▲ 필봉산 정상 김석범 씨(실질적인 정상)     © 새만금일보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된 호남좌도 필봉농악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 전승되어온 대표적인 풍물 굿이다. 그 굿의 주역이자 상쇠인 양진성 씨는 풍물 굿의 미학은 푸진 것,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즉 돈이 푸진 것이 아니라, 쌀이 푸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푸지게 모여야 되고 말도 푸져야 하고, 악樂도 푸져야 하고, 술도 푸져야 한다는 의미다.

▲ 정월대보름 굿이 열리는 필봉마을회관     © 새만금일보

   고려 조에 너먼 터라고 하여 지금의 하필마을에서 약 1km쯤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도둑이 많아서 살 수가 없자, 강성수를 비롯한 주민들이 지금의 하필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300년 된 떡갈나무(도토리나무)가 있으며 강진면 한 가운데 있다하여 중방리中方里로 불렀다. 그 후 필봉산 아래 있다하여 필봉리로 바꿨다가 하필마을로 부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마을 앞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던 한 도사가 그 바위를 없애야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 말을 믿고 마을사람들이 큰 바위를 없애버렸다. 그 후 큰 재앙은 없었으나 마을이 마도지석磨刀之石처럼 가난해졌다고 한다.

▲ 상필에서 본 필봉산     © 새만금일보

지리적으로 필봉산은 강진면 상필마을 주산으로 북쪽은 모시울산과 나래산, 북동쪽은 칠백리고지와 백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동쪽은 백이산, 동쪽은 두만산과 무제봉, 동남쪽은 원통산과 지초봉, 남쪽은 쇠뿔봉과 회문산이 우뚝 솟아있다. 서쪽은 용두봉과 옥정호가 지척이다.

1769년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우리전통지리서인 <<산경표>>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로 고찰해 본 필봉산의 산줄기는 이렇다.

▲ 필봉임도에서 본 필봉산     © 새만금일보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가 팔공산 옆 마령 치에서 북서쪽으로 성수지맥(섬진 3지맥)을 나눈다. 마령 치에서 성수지맥은 구름재와 임실 성수산, 고덕산, 삽치(17번 국도), 봉화산, 매봉. 무제봉, 백이산을 거쳐 칠백리고지(706m)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밤재를 지나 산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곳에 필봉산을 일구어 놓았다. 필봉산의 물줄기는 섬진강 본류에 합수되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다. 
    
▲ 필봉산 임도에서 본 백련산     © 새만금일보

▲ 산행안내

o 상필마을회관-마을좌측 임도-잡목구간-잡목능선-능선삼거리-필봉산(649m)-능선 삼거리-583봉(지도상 필봉산)-잡목구간 하산길-우측임도-필봉저수지-상필 마을회관

필봉산은 벌목으로 잡목이 우거져서 등산로 없는 상태여서 등산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 낫과 톱으로 잡목을 제거하면서 마을 좌측에서 시작되는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잘록이 부근으로 잡목구간을 올라야한다. 잡목구간을 지나 필봉산 삼거리에서부터는 등산로가 좋아진다. 이곳에서 필봉산(649봉) 정상은 동쪽으로 0.5m쯤 뻗어나간 곳에 있다. 정상에서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북쪽 능선으로 향하면 지형도에 필봉산으로 잘못 표기된 583m봉에 닿는다. 북쪽은 밤재와 칠백리고지 등을 거쳐 백련산으로 이어지는 성수산지맥 산줄기다. 하산은 동쪽 능선을 따라 가다가 잡목을 헤치고 임도로 내려서야 한다. 임도에서 필봉저수지를 거쳐 필봉마을 회관에 닿는다. 

▲ 필봉 대보름 굿     © 새만금일보

▲ 문화유적과 명소

[임실 필봉농악]

호남좌도 필봉농악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300여 년 전부터 전승되어 온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적인 풍물 굿이다. 오늘날과 같이 수준 높은 풍물 굿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강진면에 사는 유명한 상쇠 박회삼을 필봉마을로 초대하면서부터다. 그 뒤 2대 송주호 상쇠를 거쳐, 필봉농악의 1989 보유자로 인정 3대 상쇠 양순용에 이르러 필봉 굿은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를 큰 아들 필봉농악 4대 상쇠 양진성이 물려받았다. 그는 임실 필봉농악전수관을 건립하여 임실필봉농악의 안정적인 지원을 통해 전통문화 보호 육성에 힘쓰고 있다. 필봉농악의 특징은 앞 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뒷 굿 또는 놀이 중심이 강하여 잡색, 고깔 소고가 많고 가락은 전체적으로 힘차고 꿋꿋하며 투박한 느낌이 든다.

[필봉농악전수관]

필봉농악전수관은 전설이 된 풍물 굿을 축제로 만들고, 노동과 생활의 근심을 신바람으로 바꾸는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는 전통문화체험학교를 연중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필봉농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풍물전시관과 전통문화체험이 가능한 필봉한옥스테이를 중심으로 농악경연대회, 문화관광 상설공연, 야간상설공연 등이 있다.

필봉전통문화체험학교는 초. 중. 고학생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풍물, 민요, 대동놀이, 천연염색, 국악공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임실필봉문화촌에 위치한 전통문화체험학교는 과거에 있었던 우리 문화를 단순히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배우는 곳이다. 

▲ 교통안내

o 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IC-순창-27번 국도-덕치-강진-필봉교차로(서쪽)-필봉마을회관

o 호남고속도로 전주 IC-전주-27번 국도-필봉교차로(서쪽)-필봉마을회관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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